하늘치 이야기/독서 노트

[소설] 다시 읽은 베니스의 개성상인.

하늘치 2007. 8. 3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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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개성상인'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먼지가 쌓인 책을 들고서 첫 몇 페이지를 넘기자 플란더즈 화풍으로 잘 알려졌다는 루벤스의 그림, '한복을 입은 남자(Korean Man)'가 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대를 뛰어넘는 안토니오 꼬레아의 머나먼 여행 이상으로 내 뇌리에 강하게 인식된 것은 한복을 입고 있는 남자의 알듯 모를듯한 잔잔한 미소였다. 그의 입가에는 비천한 신분의 사람에게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혈혈단신으로 그토록 먼 세계로 간 사람이 어떻게 그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까. 더구나 루벤스같은 명장을 초빙해서 그림을 그리게 했을 정도라면 사회적 신분이나 재력도 상당했을 게 아닌가. 그 사람이 정말 안토니오 꼬레아라면 어떻게 해서 먼 이국 땅에서 자수성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조선에서는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이었을까.

궁금증은 더해가기만 했다. 생김새로 보아 경기도 서해안 지방의 사람 같다는 추측(조선일보 1984. 11. 23)만이 유일한 실마리였다..

-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 작가의 말(1993년 중판본) 중에서..
- 소장 : 미국 LA, 폴 게티 박물관 Paul Getty Museum
- 참고 : 박물관 웹페이지 바로 가기

1995년 8월 10일. 동생이 전3권짜리인 이 책을 동네 서점에서 사왔을 때는 이미 신문등에서도 광고가 제법 나오고 있을 때였다. 당시 제법 재미있게 읽었던 이 책의 매력은 역시 대리만족의 즐거움, 그것이 아니었을까.

각 권두에는 'Korean Man'이라는 이름의 그림이 실려있다. 거장(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루벤스의 그림이라는 메리트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그림의 경매가는 1983년 11월 29일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소묘부문 최고가(32만 4000파운드)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 듯 하고. 현재는 미국 LA에 있는 폴 게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림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역시나 그림의 주인공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처음엔 몰랐지만, 보면 볼수록 그 알듯 모를듯 흐르는 미소에서 느껴지는 여유, 그것이 오세영 작가가 느꼈던 것 아닐까.

정확한 연도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한 때 이탈리아 남부의 알비(Albi)라는 작은 마을에 2백여명 거주하는 코레아 성씨가 안토니오 코레아의 후손이라는 언론 보도와 다큐멘터리 등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가 된 적이 있었다. 나 역시 꽤나 흥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고. 하지만, 이탈리아 알비(Albi)지방의 꼬레아 성씨와 안토니오 꼬레아와의 정확한 관련성은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는 듯 하다.

소설을 다시 읽게 된 계기로 인터넷을 통해 관련 기사를 찾아봤지만 이미 소설과 사실의 구분이 모호해서 포스팅하기가 어려웠다.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소설답게 이러한 모호한 부분을 논리적인 상상력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당시 소설장르의 유형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평행선을 달리다가 결말 부분에서 접접을 이룬다는 설정도 꽤 괜찮았다. 뭐.. 아쉬운 점이라면, 과거와 현재의 안토니오가 만나는 부분에서 기대했던 임팩트가 다소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는 것 정도.

또 하나 매력적인 부분은, 역시 과거 우리 민족의 활약상을 그려냄으로서 민족적 자부심을 한껏 치켜주고 있다는 점 아닐까. 그리고 이런 설정은 최근 우후죽순처럼 쓰여지고 출판되는 판타지 무협소설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상당히 선구적인(?) 작품이 아니었을까. 물론, 판타지,무협류의 소설에서는 주로 시공간적인 점프나 환생등을 소재로 써나갔다는 점에서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덧글..

2002년 수정, 재발간한 책소개 중에서..


임진왜란의 포로로 이탈리아에 건너가 지중해 무역을 주름잡은 한국인 안토니오 코레아의 이야기. 1993년 처음 출판되어 2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던 화제의 베스트셀러가 수정을 거쳐 재발간 되었다.

93년 판에서는 17세기 초중엽의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안토니오 코레아(유승업)의 이야기와 20세기 후반을 배경으로 하는 한국 종합상사 직원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진행되었지만, 2002년 판에서는 안토니오 코레아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다. 즉, 안토니오 코레아의 드라마틱하고도 감동적인 인생역정을 좀더 긴박하고 빠른 리듬으로 일어나가게 된 셈이다.


아.. 수정판이 나왔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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