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쓴 루피/사는 얘기

다산은 말한다.

하늘치 2007. 9. 1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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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척이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일찍 일어났다.

주말 아침에 6시 기상이면 일찍 일어난 거지 뭐. 그래도 피곤한지라 누워있었다. 컴터도 좀 하다가 평소같지 않게 금세 피로해져서 다시 누웠다. 그러다 아침을 먹고 또 다시 누워 있다가 모처럼 텔레비전이 보고 싶어져서 거실로 나갔다. 뭔지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김제동 사회로 아이들과 연예인들이 짝꿍을 이뤄 퀴즈를 푸는 프로그램. 손창민씨의 호통에 어찌나 웃어댔던지.. 그렇게 웃어본 건 또 얼마만인지..

그래서일까. 내 인생의 즐거움이 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너는 술도 안하고, 담배도 안하면 무슨 낙으로 사냐?

지금 일하는 데서도 그랬고, 이전에 일하던 데서도 그랬다. 그럴 때면 나는 늘 웃음으로 대신하거나, '낙으로 삼을꺼야 많죠..'라며 얼버무리곤 했다. 내 인생의 낙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마음도 여유도 없이.

오늘 내가 보낸 시간은 이런 작은 생각과 약간의 게으름, 습관으로 점철된 신앙생활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벌어진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선데이 크리스챤이다. 그리고 내 신앙생활이 정말 즐겁지만은 않다. 냉정하게 생각해보건데, 내 신앙을 지탱해 주는 것의 5할 이상은 그저 교회에서의 인간관계다.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오할이 신앙이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과연 1할이나 될까?

하나님이 존재하심은 여러 경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번 알바 경험도 그 중에 하나가 되리라. 내가 있는 현대택배의 한 직원은 나보다 한 살이 많다. 첫날과 이튿날, 같이 점심을 먹는 중에 내가 기도한 것을 보고서, 그 다음날 오후에 말을 걸어왔다.

'교회 다녀요? 천주교?' 나는 말했다. '기독교에요. 개신교.'

그 때부터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특히 군대 경험.. 그저 듣기만 해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고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신도 모태신앙이라면서 풀어놓는 이야기는 우리가 교회에서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신앙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일은 열심히 하지만 왠지 '양아치' 분위기가 난달까? 하여튼 순진한 신앙인은 절대 아니었다. 그는 다른 직원의 '너는 교회 다닌다면서 왜 기도 안하고 밥먹어?'라는 핀잔에 '추석 때 기도원 갈꺼에요'라며 '방언도 할 줄 알아요.'라고 했다. 수요예배도 곧잘 간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이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보는 동안 가졌던 첫 인상이 강렬했음을 인정한다. 담배 피우는 걸로 이러쿵저러쿵 할 생각은 없지만, 여튼 그의 겉 모습은 순진한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아, 저 '순진한'의 의미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충 들은 이상 그 단어는 지나치게 나 중심적인 것에 불과할 테니까.

아무튼, 나는 그를 추호도 신앙인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교만이었으며 내가 사람을 판단하는 편견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사실, 그의 신앙'생활'은 나보다 나았다. 적어도 나는 수요예배조차 안가니까.

다시 오늘 얘기로 돌아와보자.

나는 아침에 티비를 보면서 한참 웃었다. 즐거웠다. 어머니 먼저 교회에 가실 때도, 동생이 교회에 갈 때에도, 아버지까지 교회에 가실 때에도 나는 시계를 계속 흘끔 흘끔 쳐다 보며 티비를 계속 보았다. 아버지께서 나가실 때에는 이미 교회에 정시 도착하기엔 늦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좀 더 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워버렸다.

'어떡하지.. 이제 씻고 간다 해도 왕창 늦겠는데... 그냥 오후에 갈까. 아니면 그냥 집 앞 부모님 다니시는 교회로 갈까..'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지난 주 도서관에서 빌려두고 아직까지 읽지 못했던 책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을 폈다. 서점에서부터 꽤 흥미롭게 읽었던지라 다시 처음부터 읽어나갔다. 꽤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름 생각하기를 '그냥 이 책이나 읽어야겠다. 이게 내 삶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네..'라며 첫 챕터의 1장을 읽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아래와 같은 글귀가 있었다.

다산은 말한다.

문제를 회피하지 마라. 정면으로 돌파하라. 끈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탐구해 들어가라. 처음에 우열을 분가날 수 없던 정보들은 이 과정에서 점차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 거기서 실마리를 잡아라. 얽힌 실타래도 실마리를 잘 잡으면 술술 풀리게 마련이다.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자꾸 들쑤석거리기만 하면 나중엔 아예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손쓸 수 없게 된다. 핵심을 놓치지 마라. 실마리를 잡아라.

젠장.

나는 결국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바로 교회로 직행했다. 어차피 늦긴 했지만..

교회에 가기 싫은 마음이 오늘처럼 강하게 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가지 않으려고까지 생각을 했었는데, 모처럼 읽은 부분이 '문제를 회피하지 마라. 정면으로 돌파하라.'라니. 게다가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탐구해 들어가라'고? 이거야 원.. 내 신앙에 있어서 절실히 필요한 부분을 아주 쿡!쿡! 찔러대는 말이 아니던가. 그래서 늦었지만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지만, 그래도 예배는 끝나지 않았었다. 원래 목사님께서 말씀을 오래 하시니까. 그렇게 예배당 뒤에서 남은 예배 시간을 보낸 후,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특별한 이유같은 건 없었지만, 그냥 집으로 곧장 돌아오고 싶었다. 다른 생각 따위는 하려고 들지도 않았다. 다 귀찮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나 스스로에게 주체할 수 없는 짜증이 몰려와서?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걸 알겠는데, 나는 정작 그걸 의식하지도 믿지도 의지하지도 않는 것 같다. 심지어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끈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탐구해 들어가라.'는 다선선생의 말씀처럼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내 신앙에 대해서 그리 하고 싶지만, 그럴 열정이 내게는 없다. 없으면 없는 거지 왜 이렇게 또 내 마음은 불편한 것인지. 그렇다면 차라리 그리 탐구해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있으면서 귀찮아 하기만 하면 어쩌자는 것인지.

아무하고도 만나고 싶지도,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은 날이었다. 오늘의 일, 내 자존감 축소와 자신감 결여의 결정체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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