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쓴 루피/나만의 30제

[01/30] 제1제. 고향

하늘치 2007. 2. 1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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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어딘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주저 없이 태어난 곳을 말했던 기억이..
어느 샌가 가장 오래 산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지금을 보게 된다.

뭐, 마음이 향하는 곳이 있다면 그 곳을 고향이라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누가 뭐래도 고향이라 함은 태어난 곳.



고향에서 지낸 건 국민학교 5학년 초까지였다.

물론, 이사 간 후로도 고등학교 때까지 방학만 되면 고향에 내려가 한 달 내내 지내다가 온 기억이 난다. 새카맣게 타서 말이지.. ^^;

내가 그곳에서 살 때, 교환식 전화가 우리 동네에 처음 들어왔었던 기억이 난다. 검정색 전화기 옆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몇 번을 돌린 후 송수화기를 들면 교환이 연결되던 그런 전화기. 그런 시절이었으니 에어울프나 키트, 전격Z작전 같은 것이 재미있었을 수 밖에. 요즘.. 케이블에선 전격Z작전인가를 보여주던데... 못보겠더라;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아주 자유로웠던 느낌이 든다.


모래사장에서 놀던 일, 낚시 하려고 갯지렁이를 찾아 헤메던 일, 바닷가에서 불장난 하던 일..

먹구름이 잔뜩 끼어 금세 한바탕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에.. 파고마저 높아져만 가는데... 그 파도를 타고 놀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어 입술이 파래지도록 놀고 놀고 또 놀던 일..

학생 수가 18명에 불과했던 우리 반 아이들과 쉬는 시간만 되면 축구하러 나갔던 것..

김을 말리기 위해서 바닷가에 설치된 곳에서 놀다가 어른들 몰래몰래 김을 한 장, 두 장 뜯어먹다가 들켜서 혼났던 것..

바닷가에 지천으로 널린 고동이며 조개며 모아다가 철판에 구워 먹었던 일..

군인들 훈련차량 꽁무니 쫓아가다가 건빵 얻어먹었던 일..

눈이 엄청나게 쏟아져 내려 눈덩이를 조금만 굴려도 금세 눈사람이 만들어졌던 것. 너무 많이 굴려서 윗몸통을 들지도 못해 결국 발로 밟아 부숴야 했던 것...

학교 선생님이 바로 윗마을에 계셔서, 명절 때에 부모님께서 전해드리라고 하신 내복 한 벌 가져다 드렸는데 선생님께서 쥐어주신 500원에 기분이 좋아 입이 귀에 걸렸던 일...

밤송이 따러 산에 올라가는 길에 산딸기도 따 먹고, 딸기 서리, 수박 서리 하던 일..

교회 옆에 있던 경사진 무덤에서 미끄럼 타던 일...

친구며 동네 형이며 모여서 자치기, '진'놀이 등등 밤늦게까지 하다가 추워서 덜덜 떨던 일..

명절이 되면 도회지에서 온 다른 집의 또래 여자아이 얼굴 보러 갔다가 교회 못 갔던 일..

겨울이면 동네 친구들이랑 시멘트 포대 종이를 구해다가 튼튼한 가오리 연 만들어서 추수가 끝난 밭이나 논에서 연날리기 하며 놀았던 추억들..

다른 동네에서 예배 드리다가 우리 동네에 교회 건물이 세워지는 걸 매일매일 구경하던 일..


정말 많은 추억거리들.. 와... 이렇게나 많았구나.. 조금 밖에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도 어린 시절을 그리 박하게 살진 않았었구나..

내 아무리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긴 했어도 내 마음의 고향은 여전히 완도.
고향의 맑은 밤하늘도, 여름의 찐득찐득한 바다 내음도, 상쾌했던 산 속의 나무 냄새도...
여전히 내 마음과 영혼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는 듯 하다.

보란듯이 세상 일에 성공할 수는 없을 지 몰라도...
고향만큼은 언제나 그 곳에 있어 평안한 안식의 거처가 되어준다.

고향에 가고 싶다. 지금의 고향이 아닌, 어린 시절의 고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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